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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제인 에어

Libby 2024. 4. 9. 22:31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사랑 이야기 중에 가장 애틋하게 다가온 로맨스 소설은 샤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가 아닐까 싶다. 중학교 시절 방학 때만 되면 방구석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은 마구잡이로 읽었던 책 중에 적어도 두세 번은 반복하여 읽었던 소설이다. 그만큼 나에게 많은 만족감을 준 소설이었다. 신분이 서로 다른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소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 치면 대중 소설에 가깝지만 고전 문학으로 꼽힌 덕택에 자랑스럽게 내놓고 읽었던 소설책 제인 에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 영상 매체가 발달한 이후로 몇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영화에 따라 매번 바뀌는 주인공 배우들만 빼면 한결같이 제인 에어와 사랑에 빠진 로체스터와의 끈끈한 줄다리기 이야기이다. 읽어가다 보면 이야기 속에서 간간이 흘려 나오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읽는 이를 더 긴장하게 하고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결국, 비밀리에 감춰둔 진실이 중요한 날 터져버리는 극적인 상황도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와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작가 샤롯 브론테의 가족에 대해 설명하자면 세 자매 모두가 자기만의 색깔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 독특하다. 보통은 가족 중 한 명이 소설을 쓰면 다른 자매들은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표출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쨌든 이 세 자매는 함께 19세기 중반에 책을 써서 출판하지만 자신들의 이름으로 발행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현재의 영국 여성의 지위는 물론 아직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경쟁력과 자질이 있으면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브론테 자매들이 살았던 1800년대 중반은 집안의 남성의 지위와 부에 의해서 여자의 위치가 좌지우지되었다. 이러한 세태 탓에 이세 자매들은 각각 다른 필명으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기로 한다.

첫째인 샤롯트는 커러라는 이름으로 둘째 에밀리는 엘리스 그리고 막내인 앤은 액튼이라는 필명으로 각각 자신들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 물론 세 명의 자매들은 다 같이 같은 성인 벨로 사용하기로 한다. 나중에 막내인 앤이 출판하려고 미국 출판사와 접촉을 하게 되는데 성은 같고 이름이 틀려 모두 같은 사람이 쓴 걸로 착각하게 된다. 사실 샤롯트가 쓴 제인 에어가 큰 히트를 치면서 앤이 출판하고자 했던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이 제인 에어를 쓴 사롯트와 동일인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앤과 다른 자매들이 출판사를 방문하여 확인까지 해주게 되면서 이 일은 일단락된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자신들의 소설을 출판하지만, 성이 같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왜 이세 자매들은 자신의 이름들을 사용하지 않고 남성적인 가명을 써가면서 출판을 하게 되었을까?

영국은 통치 권력에 있어서 여왕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반 여성의 지위는 상당히 낮았다. 그 당시에는 많은 것이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니 브론테 자매들이 자신 있게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기에는 많은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 시스템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만약에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주변에 자신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일반 대중에 의해서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평가되기 십상이고 만약에 부정적인 소문이 돌아다닐 경우 가족의 명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19세기 중반의 시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여러모로 족쇄를 채우는 시스템이나 관습이 많이 있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져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당할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자신 있게 사회에 내디뎌 자신들의 재능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능력에 족쇄를 채웠던 영국 사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시작한다.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구름처럼 남성 중심의 답답한 영국 사회는 더 이상 한 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점점 더 여성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강해져 갔기 때문이다.

영국 여성들이 자신들의 참정권을 가지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면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언제 어떻게 참정권을 갖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해방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사뭇 그것과는 다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른 어느 국가보다 앞서 간다고 자부하던 영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은 1918년이 되어서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덜 완성된 참정권이었다. 여성의 참정권을 단호히 반대해 왔던 보수당이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많은 이바지를 한 여성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고 전쟁에서 전사한 남성의 수가 많이 적어짐으로써 30세 이상의 여성만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마지못해 찬성하게 이르게 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28년도에 드디어 남녀동일 하게 21세부터 투표를 할 수 있는 선거법이 개정되어 비로소 현재와 같은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이다. 동등한 선거권을 갖기 위해 영국 여성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하기도 하고 때때로 무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1918년 전후로 곳곳에서 여성들의 시위를 볼 수 있었고 기록에 따르면 시위로 잡아들인 여성들이 경찰서에 넘쳐났다고 한다.

거리에서 의회에서 투쟁하여 참정권을 이끌어낸 여성들의 후손이어서인지 가끔씩 살다 보면 영국 여자들이 당차고 강하다고 느낄 때가 참 많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 못하면 가질 수 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감정이나 의견을 감추거나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누구의 말처럼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 않는가 그래서 더욱이 여성들의 감정과 생각이 편하게 자연스럽게 개진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