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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고향에 가다

Libby 2024. 4. 26. 05:31

2023년도에는 바빴나 보다. 회계연도가 끝나가는데도 남은 휴가일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오는 해에는 가고 싶은 곳을 정해 미리 계획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남은 2-3일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짧은 일정이라 멀리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지인들의 이름을 뒤졌다.

멀리 이사를 가버려서 간간히 카톡으로만 연락이 되던 옛 동료와 연락이 되었고 다행히도 옛 동료와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더한 행운은 옛 동료가 사는 동네가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곳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소설들을 쓴 그 유명한 작가가 탄생한 곳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본에 몇 년째 자리 잡고 살고 있었다.

일하는 짬짬이 동료와 날짜를 맞춘 후에 바로 항상 애용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기차표를 구매했다. 런던에서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본으로 바로 가는 기차가 있긴 하지만 드문지 내가 가는 일정에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그 지역에서 큰 도시의 역으로 가는 표를 구매했다. 고맙게도 옛 동료가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픽업하러 와주겠다고 했다. 북쪽으로 가는 기차가 많이 출발하는 런던 유스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코벤트리에서 내렸다. 갈 때는 중간중간에 정차를 해서인지 1시간 반이 걸렸지만 런던으로 리턴하는 기차는 직행이어서 단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짧은 시간 동안의 이동이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 왠지 먼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도착한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본은 겨울의 끝자락이어서 인지 바람은 차겨웠고 하늘은 우중충한 구름만이 잔뜩 끼어있었다. 찬바람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채워서인지 가게에는 손님도 없었고 그나마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외투를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제갈길로 사라져 버려서 시내는 꽤나 한적했다.  이리저리 기념품가게, 옷가게, 잡화점을 둘러보다가 우연찮게 책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책방은 온통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이 책 저책 뒤척거리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빌 브라이슨이 쓴 셰익스피어의  일대기였다. 그냥 심심풀이 책으로 여행하는 동안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그렇게 산 책은 여행하는 내내 읽지 못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정리하다고 여행에서 산 물건들 중에 파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책에 손도 대지 못하다가 일주일이 지난 후에 맘 잡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게 발견한 것은 여러 문서에 기록된 셰익스피어의 스펠링 이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들리는 데로 발음을 기록한 건지 곳곳에서 조금씩 다른 스펠링이 문서에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문서들과 정황을 추론해 셰익스피어가 이 해에는 여기에 있었고 무엇을 하였나 등으로 인정되는 식이었다. 자기만이 알 수 있는 편안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창조적 바탕이었을까? 사실 셰익스피어는 극적인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자신의 쓴 극본 속에서 새로운 구절들을 탄생시킨 작가이고 그렇게 창조한 구절들이 지금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위대한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비약일까.

알게 된 또 다른 것은 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초상화는 이마가 상당히 넓어 앞머리가 거의 없는 얼굴의 초상화만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이어링은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나? 셰익스피어의 왼쪽 귀에만 이어링을 하고 있는 초상화를 보면 상당히 예술적인 끼가 다분해 보인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남자가 이어링을 했다는 것은 용감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도 한다. 예술을 하고 있는 자의 남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용감함이었을까?

런던 템즈강 앞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에는 고전 미술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가끔씩 그곳에 가서 중세시대의 초상화를 감상한다. 알록달록한 레이스가 달린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부터 멋지게 차려입은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내가 본 중세시대의 초상화 인물들 중에 귀고리를 하고 있는 초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 귀걸이를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봤을 때 센세이션한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 그림 속의 인물이 진짜 셰익스피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혹시 영국에 올 일이 있으면 이 작은 마을,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본을 당일이라도 방문해 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런던과는 뭔가 또 다른 느낌인데 아주 오래된 튜더양식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까만 나무 기둥사이에 진흙으로 채워진 벽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어 건물들이 무척 깔끔해 보인다. 물론 런던에서도 드물게 튜더양식의 건물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작은 마을에 빼곡히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면 튜터왕정의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것이다.


잠시나마 다녀온 주말여행에서 셰익스피어가 어떤 곳에서 자랐는지 직접 봐서 좋았고 우연찮게 들른 책방에서 산 책으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비록 나의 짧은 이해력으로 많은 것을 습득하지 못했지만 말이다.